고향으로의 귀환…내 꿈은 진행형
고향으로의 귀환…내 꿈은 진행형
  • 김현욱 기자
  • 승인 2018.11.02 2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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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울릉 본부장
김현욱 퍼스트뉴스 울릉본부장

나는 저동 까기등 마을에서 태어나 4세때부터 울릉이 고향인 도동에서 자라고 울릉초·울릉중·울릉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대 제대후 1976년 2월 16일 울릉군 남면사무소에서 공무원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까지 울릉군청 계장으로 근무하다가 육지로 전출하여 경북도청 영주시, 경기도청에 근무중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8년 내무부전입 행정고시로 중앙부처에 진출, 4개부처 주무과장을 역임했다.

2010년 7월 24일, 나는 서울에서 대구를 거쳐 포항에서 하루밤을 머물고 고향 울릉행 여객선을 탔다. 울릉도를 떠난지 약 31년 만에 아내와 함께 부군수로 부임하면서 고향으로 귀환했다.

당시만 해도 고향 근무가 기뻐거나 새로운 트렌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의 지인들, 행정자치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중앙부처 선후배 동료들은 중앙고위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으로의 하향 전출에 대해 우리 가족을 두고 ‘우려반 걱정반‘ 이었다. 아내는 부임하자마자 중앙보다 강의, 교관출무 수당등을 포함한 봉급총액이 깍인데다 처음엔 도시생활과 다른 환경에 낯설어보여 했다.

나는 부임하자마자 정치적인 군정 수사 수검, 과도기 군수 직무대리 역할에 극도로 민감한 민심의 한가운데 서서 가족 말고는 만날 사람이 없는 저녁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는 당시 부임 1년여 지난 시점에서 대통령 형님 지역구국회의원의 의도된 인사계획에 의거 지시를 받은 부지사의 강권으로 명예퇴직 처리되어 2011년 자천 타천으로 군수보궐선거를 시작으로 2014년 새누리당 군수후보 경선,

2018년 군수선거까지 세 번 출마해 모두 실패했다.

‘내 고향 별들과 독도 동해바다의 쪽빛 바람이 이리도 밝고 푸르고 맑구나’에서 시작한 서정시가 ‘이제 살아지는 것에 대하여’ 라는 다소 묵직한 이야기로 흐를 때쯤 나는 인생 사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아는 것이 힘이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오직 내고향 발전을 내가 주도하여 고향선후배 어르신들에게 자족특별군을 만들어 행복을 주는 삶을 살겠다며 부모님의 유언 또한 실천해야 겠다는 각오로 머슴군수를 선택했으나, 번번이 부족함을 확인해야 했다.

36년 공직기간 동안 울릉군청 등 지방공무원 근무기간을 빼면 약 31년간 내무부(경상북도 총괄 감사관, 감사원 파견 감사관), 행정안전부(행정자치부),통일부, 국무총리실, 문화체육관광부 등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당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 이명박 정부를 두루 거치며 다양하고 풍부한 행정경륜과 행정·사법·입법부 및 대기업 경영자(현대, 삼성,한양, 전경련, 관광레저도시 시행자협의회 고문) 관계의 끈을 포함, 약 1,000명의 인맥을 쌓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광화문 세종로 정부종합중앙청사에 출근하고, 평균 오후11시∼12시, 밤늦게 때로는 새벽에 밤을 세워가며 퇴근하면 씻고 잠자리에 들기 바쁜 삶, 주말에도 휴일에도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며 고민하던 그런 삶, 그때는 그랬다.

지방군수직을 향한 비전 하나로 고시라는 좁은 관문을 통과해 내무부 등 정부에 입문한 당시 선후배 동료들은 청춘을 정부중앙청사에서 보내면서 너무 힘들어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

그 성과가 달성되지 않은 지금,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고, 고향에서 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애를 써고 있다.

비록 중앙부처에서 훈련받은 지방군수직을 향한 비전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라 4대째 살았고 서울에서 고향으로 귀환한 후에도 강원도에서는 군수로 여기는 고향 부군수를 거쳐 울릉에 9년째 살고 있으니 도시로 전출할 때 ‘꼭 고향의 군수가 되어 봉사하라’ 라고 당부하셨던 부모님의 유언은 반은 실천하게 된 셈이다.

‘부모님과 같은 어르신들, 선배든 후배든 단 한 사람만이라도 긴박한 삶의순간을 맞이했을 때, 신뢰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의 한사람을 만들어보자‘ 는 목표를 첫 선거 실패 후 가졌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여 많이 좀 도와 달라고 부탁드리며 고향발전에 관련된 일을 할 작정이다.

내 작은 꿈이었던 발전하는 고향 울릉에서의 삶, 그리고 중앙부처의 다양한 행정경험과 풍부한 경륜을 바탕으로 주요마을이 요망하는 사항과 해결책을 분석·자문하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미래의 꿈에 대한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갈 계획이다. 울릉에서 내삶의 주인되기를 위하여…

삼무 오다(三無 : 도둑, 공해, 뱀, 五多 :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의 섬

울릉도는 신이 축복 주신 땅이다. 울릉도 면적은 72.86㎢로 여의도(8.48㎢)의 아홉배에 달하며 2015년말 기준 인구 10,300여명에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연상케하는 신비로움으로 가득찬 땅이다. 울릉도에만 서식하고 있는 고유수종 의 밀도는 갈라파고스 군도보다 현저히 높아 생태관광자원의 보고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깍아지를듯한 기암 괴석이 금강산 일만 이천봉 이상으로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듯이 섬을 돌아가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해안 도로를 따라 가노라면 하나님이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듯한 절묘하고 신비스러운 바위들이 천지를 이루고 병풍처럼 울릉도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부속도서가 44개나 된다.

울릉도는 1970∼80년대 까지만 해도 군정구호가 ‘파도를 막자, 길을 뚫자’였고 주민수는 30,000명이 넘었으나 공무원은 군청, 읍면사무소 임시직을 포함해 69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어려운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일주도로 개통,공항과 신항만 건설을 눈 앞에 두고 있어 명실상부한 국제생태관광휴양 섬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울릉도는 주종인 오징어 어획고 부진으로 거주인구 또한 1970∼1980년도기준 30% 내지 40%가 줄어들었으며,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22%로 경제활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국토 면적이 한반도 남짓한 영국도 관광전략, 해양기술과 바다의 중요성을 꿰뚫은 혜안과 개척정신, 국가적 리더십의 조화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대영제국을 건설했듯이 규모적인 측면의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울릉군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울릉도는 관광경제특구를 개발하고 국제생태관광과 해양관광전략을 수립, 독도를 품에 안고 있는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독도주권운동을 전개하고 국제항로를 개설하여 이것을 통해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한국관광레저문화진흥원장. 전 울릉부군수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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