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애정의 조건
엄마의 애정의 조건
  • 최원창 기자
  • 승인 2021.06.0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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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미정 음악치료사
사진=김미정 음악치료사

엄마의 노랫소리가 그리울 때면 엄마가 즐겨 부르던 즐거운 나의 집’, ‘메기의 추억’, ‘오 데니보이’,를 흥얼거립니다.

9남매 맏며느리!, 대가족 속에서 늘 분주하게 살았던 엄마! 어렸을 때 엄마의 노트를 읽으면서 일기장인 걸 알았습니다. 고단한 삶, 외로움, 서러움, 무심한 남편,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잃지 않았던 엄마! 눈물로 얼룩진 자국도 보였습니다. 난 어린 나이였지만 분주함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 많은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 살았던, 작은 한옥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고모, 그리고 아저씨 언니라고 불렀던 친척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했습니다. 벽장을 열고 지푸라기에 쌓인 달걀 꾸러미 속의 달걀 한 개를 살짝 꺼내서 몰래 프라이 해주곤 했던 엄마!

대가족 아니 마치 공동주택 같았습니다.

내가 고3(1975) , 많은 분들의 존경을 받고 열정적으로 일했던 아버지께서 사고로 떠나신 후 한 달 사이에 엄마는 8kg이 빠졌고 몇 번이나 실신을 했습니다. 그 후 엄마의 일기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채워져 갔습니다.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남편을 향한 뒤늦은 고마움과 인정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어떤 날은 홀로 남겨진 것에 대한 힘겨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넉두리 했고 그러면서도 4남매를 잘 키워보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했습니다. 마치 남편과 대화 하듯이 기쁜 소식도 알리고, 속상한 일은 투정도 했고, 때론 노래가사와 시로써, 때론 스스로에게 독백하듯 써내려간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눈물 삼킨 날도 많았습니다. 엄마가 쑥스러워 할까봐 큰 딸이면서도 모른 척하며 더 많이 안아드리지 못 한 것이 세월 갈수록 죄송합니다.

결혼 전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신 엄마는 학생들을 씻겨가면서 가르쳤다고 했고 어버이날에 옛날 제자들이 전화를 했을 때 눈물겹게 통화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버지 떠나신 후 추도식 때마다 기도문을 정성 다해 직접 준비하셨는데 때로는 하느님께 하는 기도문이 아니라 남편에게 고하는 글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식들 좋은 소식은 자랑하며 기뻐해 달라고, 힘겨운 자식들을 위해서는 힘을 실어달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길어져서 오신 분들에게 폐가 될까봐 큰 딸인 나는 눈치가 많이 보였습니다.

가족회의 끝에 동생들과 함께 묵은 살림을 과감하게 정리했을 때 옛날 3층 자개농에서 1975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양복이 나왔습니다.

이런 걸 지금까지 다 짊어지고 사니까 이렇게 살림이 많잖아!” 하고 큰 딸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까칠하게 한 마디 하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한참동안 그 양복을 쳐다보며 만지고 또 만졌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웅얼웅얼 거렸습니다.

엄마한테 그 양복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그 많은 묵은 살림을 다 정리하고 작은 가방, 옷 몇 벌, 책 몇 권, 일기장, 성경책, 노래책만 가지고 요양원에 들어가셨습니다. 결국은 작은 가방 하나로 정리가 된 모습을 보며 허무했습니다.

요양원에 계실 때,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힘없는 손으로 펜을 들고 사계절에 대한 감사와, 4남매의 우애를 위한 기도문을 쓰셨습니다. 또한

엄마, 노래할까요?”하면 먼저 노래 책을 펴시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떠나시기 며칠 전까지 노래책 보고 혼자 익힌 노래가 최유나 씨가 부른 애정의 조건이었는데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박자 음정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엄마와 나는 서로 내 노래야!” 라고 했지요.

엄마한테 애정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도 나의 애창곡입니다.

때로는 그리운 마음에 쓸쓸히 눈물짓지만

때로는 추억에 젖어 쓸쓸히 웃음 짓지만

사랑은 너무 아파요 사랑은 너무 미워요

내 작은 몸짓으로 어쩔 수 없는 사랑 사랑 사랑의 조건은~”

어머니!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유전자 덕분에 인생 이막을 음악치료사로 시작하여 하모니코치로 기여하는 삶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글쓴이: 김미정(하모니코칭센터 대표/음악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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