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술
  • 정귀순 기자
  • 승인 2019.12.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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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기록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술은 맥주다. 최초의 기록은 터키 동부 고원에서 시작해서 시리아와 이라크를 지나 페르시아만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 티그리스강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다.

사람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그려진 기원전 4,000년경의 점토판에서 쐐기 문자로 기록된 고대 맥주의 원료와 맥주 배급표가 발견되었다. 기원전 1,800년의 점토판에는 고대 수메르 술의 여신 닌카시를 찬양하는 노래도 남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맥주의 발상지인 중동 지역에는 술이 금지된 국가가 많다.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 시절까지 무슬림이 아니라면 술을 판매할 수 있었으나, 2016년 10월 이후 술의 제조 및 판매가 모두 금지되었다. 비록 본고장에서 배척받지만, 맥주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고 가장 많은 사람이 마시는 세계인의 술이다. 수메르 맥주는 걸러 내지 않아 막걸리와 비슷한 탁한 술이었다. 효모는 걸러 내지 않았고, 발효되지 않은 탄수화물도 남아 칼로리도 높았을 것이다. 효모가 만든 비타민도 남아 있는 일종의 술 음료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집트의 맥주는 피라미드 노동자에게 매일 4~5리터씩 배급되었다. 그래서 맥주가 없었다면 피라미드도 없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이집트 맥주는 항생제 역할도 했다. 이집트 남부에서 발견된 당시의 유골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테트라사이클린의 흔적이 발견되어 의문을 자아냈다. 지금도 많이 사용하는 항생제인 테트라사이클린은 장기간 복용하면 치아가 누렇게 변하는 부작용이 있다. 발굴된 유골에서도 테트라사이클린에 의해 특이한 문양으로 변색된 치아가 확인되었다. 이후 최신 화학 분석 기술을 이용해, 발굴된 유골에서도 테트라사이클린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미국 에모리대학교 연구팀이 확인했다. 테트라사이클린은 20세기에 발견된 항생제인데, 기원전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발견되었다는 점은 불가사의하다. 합리적인 설명을 하자면, 고대 맥주를 담그는 과정에서 테트라사이클린을 만드는 토양 미생물이 같이 자라 항생제 맥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이런 미생물을 분리해 공업적으로 배양한 다음, 테트라사이클린을 만들어 의약품으로 사용한다.

로마 제국에서 맥주는 환영받지 못했다. 유럽 북쪽에서 마시는 이상한 보리 음료라는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부터는 수도원에서 맥주를 만들었다. 웬만한 수제 맥주 규모 이상으로 생산했다. 자급자족하고 남는 것은 주변에 베풀라는 성 베네딕트의 수도원 규칙이 생겼고 몇 세기가 지나서 맥주를 만드는 수도원은 600개까지 늘어났다. 중세 수도원이 막대한 토지와 재산을 소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글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수도사들 덕분에 맥주 제조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탁한 술에서 맑은 술로 변했다. 수도원에서는 교회 의식에 필요한 와인을 만들었지만, 포도 재배가 불가능한 북유럽이나 북동부 지역 수도원에서는 맥주를 만들어 성찬식에도 사용했다. 와인과 비슷하게 알코올 농도도 높고,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시킨 짙은 색깔의 맥주를 만들었다. 벨기에의 수도원 맥주 중에는 알코올 농도가 와인만큼 높고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시키는 맥주가 아직 남아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도사나 순례자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중세 맥주로 발전했다. 독일어로 ‘순례자의 여관’으로 번역되는 클로스터쉔케(Klosterschenke)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맥주를 나누어 주는 곳이었다. 독일 전 지역에서 맥주를 만드는 수도원은 100개가 넘었고, 맥주 인심도 후했다.

중세 맥주는 질병 예방에도 한몫했다. 과거 유럽은 장티푸스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렇기에 끓여서 만드는 맥주는 물보다 안전한 음료수였다. 벨기에 성 베드로 수도원의 성 아놀드 수도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비위생적인 물 대신 맥주를 마시게 했다. 유럽에 전염병이 유행하던 11세기경, 수도원 주변의 사람들은 역병을 견뎌냈다.

매년 9월 초에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맥주 축제가 열린다. 성아놀드 수도사를 기리기 위해 맥주 성찬식도 진행되는데, 아무래도 독일의 10월 맥주 축제와 경쟁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 텍사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성 아놀드 양조장도 있다. 그만큼 맥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프랑스 혁명 후 해체된 수도원의 양조 기술자들이 벨기에로 이주했다. 수도원 간판을 내걸었지만 맥주 양조가 본업인 사이비 수도원도 생겼다. 이즈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의 월로니아 동네 맥주가 페일 라거인 세종(Saison) 맥주로 발전한다. 벨기에 맥주 문화가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시작점이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독일의 수도원 맥주도 대부분 사라졌다. 아직 남아 있는 가장 유명한 시메이(Chimay)는 벨기에 남부 시메이의 스코르몽 수도원 양조장에서 제조되는 수도원 맥주다. 수도원 맥주 중 2위의 생산 규모지만, 150년 전부터 외부 판매를 시작해 유명해졌다. 지금은 현대식 시설에서 대량 생산되어 우리나라까지 수출된다. 수도원 맥주답게 판매 수익은 수도원과 종교 시설에 쓰인다.

글 허원(강원대학교 생물공학과 교수)

서지정보 ≪지적이고 과학적인 음주탐구생활≫ 허원 지음 더숲출판사 2019. 08. 23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12월호 중 발췌

한국건강관리협회

http://gwangju.kahp.or.kr/

< 문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062-363-4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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