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우리 보훈섬김이가 있잖아요!
어르신~ 우리 보훈섬김이가 있잖아요!
  • 박승혁 기자
  • 승인 2018.08.13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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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숙 광주지방보훈청 보훈섬김이

“설 여사~ 김치가 떨어졌어!” 하지만 뒤쪽 말씀은 잘 들리지 않는다. 아마 미안한 마음에 그러실 것이리라. 묵은 김치 좀 가져다 달라는 부탁이 아직은 어려우신가보다. 전화기 너머의 겸연쩍은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아 괜히 내 마음까지 애잔해 진다. 면사무소에서 일주일에 한번 제공 되는 반찬도 다 드시지 않고 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요즘엔 식사량이 늘어 반찬 부탁이 잦아진다.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닌가!

보훈섬김이로 어르신댁을 찾아뵌 지도 어느덧 6년째이다. 전쟁에 참전하시고 겨우 살아 돌아왔다는 어르신은 지금은 할머니도 먼저 보내시고 혼자 계신다. 자녀분들이 몇 분 계시지만 모두 멀리 계셔, 매번 찾아뵙기는 바쁘다 하신다. 항상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고 계시는 멋쟁이이고 사람들에게 정을 많이 베푸시는 어르신이라, 찾아뵐 때마다 기분이 좋게 해 주시는 어르신이다.

지난 가을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파킨슨병 진단이 나오고 병원 치매병동에 무려 4개월을 계신 것이다. 재가복지서비스라 찾아뵙지는 못하고 전화만 한 번씩 드렸는데, 설날을 3일 앞둔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손자들이 명절날 내려오신다며 퇴원을 좀 도와 달라는 것이다. 건강해지셨나 하는 기대와 함께 퇴원 절차를 마치고 차로 모시고 나오는데 앞이 캄캄해진다. 다리엔 힘이 없으신지 걸음에 힘겨워 하시고 침을 조금씩 흘리는 게 내가 괜한 일을 하고 있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마침 가까이에 계신 어르신 형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해 같이 지내실 수 있게 했다. 나도 시간날 때 마다 찾아뵙고 전화 드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명절날 자녀와 손자분들도 보고 기분이 좋으셨다고 한다. 명절이 그렇게 지나고 자녀분들은 어르신이 계신 요양원을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어르신은 안가신다고 하셨다. 병원 4개월도 힘들었는데, 요양원으로 가시면 다시 돌아오시기 힘드시다는 생각을 하셨나 보다. 나는 어르신 편을 들었다. 파킨슨병은 치매와 다르고 어르신은 초기라 운동과 식사를 조절하신다면 가정에서 생활하시는 게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어르신도 술을 끊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운동과 식사도 열심히 하시겠다고도 하셨으며 정말 열심히 운동하시고 식사하셨다.

다행이 지금은 걸음걸이에 힘도 생겼고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 지셨다. 방문하는 날 이면 창호지 문을 여시고 환한 미소로 먼저 나를 반기신다. 다만 요즘엔 입이 고프시단다. 그래서 이렇게 전화해서 김치도 말씀하시고 하신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정말 이럴 때의 감동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보는 자식들 보다 일주일에 1~2회 방문해서 가려운데 긁어 주는 우리들이 훨씬 났다고 좋아하실 때면 정말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지금 우리가 모시는 분들이 다른 분들도 아닌 국가유공자분들이기에 이런 기쁨은 배가 된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우리는 그냥 부르는 노래지만 참전유공자 어르신들은 아픔이고 상처라고 하신다. 추운 겨울날 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하루치 주먹밥 두덩어리를 간수하기 힘들어 한꺼번에 먹어 버리면 하루 종일 배가 고팠다고 한다. 고픈 배를 잡고 골짜기 얼음물을 마셨다는 기억도 하기 싫은 전장의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신다. 그분들의 헌신이 이 나라를 지켰기에 지금 한반도에 봄이 올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국가유공자를 향한 우리들이 갚아야 할 사랑의 빚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따뜻한 보훈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입이 고프면 좋아하는 음식을 따뜻하게 채워드리고 마음이 고프면 가족 이상의 보살핌으로 가려운 곳 긁어 드리는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다 잡아 본다.

유공자 어르신들 우리 보훈섬김이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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