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충남도청의 내포 이전은 단순한 주소지의 변화가 아니었다. 80년 대전 시대를 접고 서해안 시대를 열겠다는 충남의 '백년대계'였다. 하지만 14년이 흐른 지금, 내포신도시의 풍경은 기대와 사뭇 다르다. 화려한 청사 건물들 사이로 밤이면 정적이 흐르고, 주민들은 아픈 아이를 업고 타지로 달려야 하는 '섬' 같은 일상을 견디고 있다. 하드웨어(행정기관)는 옮겨왔지만 소프트웨어(정주 여건)는 멈춰버린 내포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 도청 이전은 '마침표' 아닌 '출발선'일 뿐
충남도청을 필두로 교육청, 경찰청 등 광역 단위 기관들이 속속 자리를 잡으며 외형은 제법 도시의 면모를 갖췄다. 그러나 도시는 관공서의 집합체 그 이상이어야 한다. 내포는 '충남의 세종'을 꿈꿨지만, 현재로서는 행정 기능만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모습이다. 도시 전문가들은 "기관 이전이 도시 개발의 완성이라는 착각이 지금의 정체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행정은 마중물일 뿐, 결국 도시를 움직이는 동력은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즐기는 '사람'의 활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아픈 아이 업고 천안까지… 의료는 여전히 '원정' 중"
내포신도시 주민들의 가장 큰 고통은 단연 의료 인프라의 부재다. 현재 내포신도시 내에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종합병원은 단 한 곳도 없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인근 홍성이나 예산의 의료원을 찾거나, 중증의 경우 천안·대전까지 1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문화시설과 여가 공간의 부족은 젊은 층의 정착을 가로막는 결정적 결함이다. 퇴근 시간만 되면 인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공동화 현상'은 내포가 여전히 '머무는 곳'이 아닌 '잠시 스쳐 가는 일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두 자녀를 둔 이지혜(가명·35세) "얼마전 밤에 아이가 갑자기 고열이 났는데, 내포 안에서는 갈 수 있는 야간 소아과가 없었어요. 결국 차를 몰고 천안까지 달려가면서 '이게 신도시 삶인가' 싶어 눈물이 나더라고요. 도청이 옮겨오면 서울 부럽지 않은 인프라가 생길 줄 알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기분입니다"라고 말했다.
충남도가 최근 2026년 3월 소아 특화 병원 착공을 목표로 직접 건립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지난 10여 년간 반복된 '희망 고문'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 산업 기반 실종, 낮 뜨겁고 밤 차가운 '반쪽 도시'
도시 자족 기능을 뒷받침할 산업 생태계 조성도 지지부진하다. 기업 유치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청년 인구의 유출과 가족 단위 이주 저하로 이어진다. 상가 곳곳에 붙은 '임대 문의' 전단은 자영업자들의 한숨을 대변한다. 행정 인력에만 의존하는 소비 구조는 한계가 명확하다. 낮에는 관공서 주변만 북적이다 밤이면 암흑천지로 변하는 '반쪽짜리 도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낮엔 '잠깐' 북적, 밤엔 '유령' 도시… 상권은 고사 직전
내포신도시의 상업 지구는 도시의 자생력을 측정하는 가장 아픈 지표다. 이곳의 상가 공실률은 여전히 전국 신도시 평균치를 크게 웃돌며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로변 1층, 이른바 '금노다지'라 불리는 핵심 상권마저 '임대 문의' 전단지가 빛바랜 채 붙어 있는 모습은 이제 내포의 일상이 되었다.
도시의 시계는 관공서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작동한다. 점심시간이면 공무원들로 잠시 활기를 띠는 듯하지만, 오후 6시 셔터 소리와 함께 도시는 거대한 정적에 휩싸인다. 이는 상업 용지가 도시 규모에 비해 과잉 공급된 반면, 이를 뒷받침할 상시 정주 인구가 턱없이 부족한 기형적 구조 탓이다.
여기에 '빨대 효과(Straw Effect)'는 지역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더욱 조인다. 영화관이나 대형 쇼핑몰 같은 문화·소비 인프라가 전무하다 보니, 주민들은 주말마다 쇼핑과 여가를 위해 대전이나 수도권으로 발길을 돌린다. 지역에서 번 돈이 지역에서 돌지 못하고 외부로 빠져나가는 혈세 유출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성수(가명·52) 씨는 “금요일 오후만 되면 도시가 통째로 비는 느낌이에요. 공무원들은 각자 집으로 떠나고, 남은 주민들도 즐길 거리가 없으니 타지로 나갑니다. '도청 특수'라는 말만 믿고 들어온 상인들 중 상당수가 빚더미에 앉아 떠났어요. 손님이 없으니 가게 불을 일찍 끄게 되고, 거리까지 어두워지니 사람들은 더 나오지 않는 '침체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내포의 상권 활성화는 단순히 건물을 채우는 문제가 아니라, 주민들이 주말에도 머물며 소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와 '배후 인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 '행정타운' 너머 '생활도시'로의 패러다임 전환
결국 내포신도시가 직면한 공동화 현상과 상권 침체는 행정 기능에만 과도하게 치중한 초기 설계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행정, 경제, 교육, 문화라는 사중주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자생력을 갖는다. 지금처럼 '낮에만 잠시 깨어있는 도시'로는 충남의 심장 역할을 수행하기에 역부족이다.
이제는 '행정도시'라는 낡은 외피를 벗고, 주민의 일상을 보듬는 '생활 밀착형 도시'로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2026년 3월 착공하는 소아 특화 병원을 기점으로 의료 안전망을 촘촘히 짜고, 텅 빈 상업 지구에는 청년 창업과 지역 문화가 결합한 콘텐츠를 수혈해 '밤이 즐거운 도시'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도청이 왔다고 도시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진짜 도시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행복'이 보장될 때 시작됩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도시 전문가의 말처럼, 내포의 두 번째 10년은 건물 숫자를 늘리는 개발이 아니라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내실에 집중해야 한다. 도청 이전 14년, 이제 내포는 '지나가는 곳'에서 '머물고 싶은 곳'으로 변모해야 하는 운명적 변곡점에 서 있다. 그 전환의 문을 여는 열쇠는 결국 행정의 권위가 아닌,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겠다는 정책적 의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