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태와 국가폭력: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과 과제
미얀마 사태와 국가폭력: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과 과제
  • 유훈 기자
  • 승인 2021.05.31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와 군에 의한 폭력 사태는 현재 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미얀마 시민들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와 규범을 강조해 온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에게도 국가폭력에 대한 우려와 공동의 대응을 위한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독립 이후 세 번째 발생한 군부 쿠데타는 미얀마가 그동안 국내외적 위기 속에서 이루어 온 민주화의 성과가 취약성을 드러낸 원인이 무엇인지,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글은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와 국가폭력 사태를 야기한 원인을 탈식민지 국가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군부의 역할과 지위, 군이 쿠데타를 감행한 의도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능력, 그리고 민주화 과정 속에서 드러난 미얀마 정치 지도자와 시민의 역할과 한계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이를 통해 미얀마 사태의 향후 전개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해 전망해 본다.

1.국가와 군부

미얀마 군부(Tatmadow)의 정치개입과 국가폭력 사태는 식민지 지배의 유산과 탈식민지 국가건설 과정의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식민지 모국의 의도와 필요에 따라 과다 성장한 식민지 국가는 강력한 관료-군사 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통치 체제를 탈식민지 사회에 유산으로 남긴다. 미얀마 역시 탈식민지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군에 의해 국가조직과 정치가 지배되는 결과가 야기되었다. 그러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국가의 출현은 단순히 식민지 지배의 군사주의적 유산에 따른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독립 후 미얀마는 국내 반대 세력들을 포용하는 정치적 해결책을 채택하기보다는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요구를 군사 조직들을 활용해 대응하면서 국내적인 혼란과 국가 파편화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군사 조직들은 1950년대 이후 미얀마의 핵심적인 국가 제도로 부상하였고, 군은 고유 영역인 국방을 넘어 법집행, 경제규제, 세금징수, 정보수집, 정당규제, 식량배급 등 국가의 주요 기능들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가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미얀마 정치의 폭력성은 다수의 상이한 민족들을 인위적으로 묶어 영국령 버마를 형성시킨 식민지 지배의 특수성에서 출발한다. 1946년 말 미얀마를 여러 개의 민족국가로 분리 독립시키려는 영국의 의도에 맞서 아웅산(Aung San) 장군은 ‘소수민족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핵심으로 하는 ‘팡롱 협정(Panglong Agreement)’을 소수 민족 지도자들과 체결하여 버마 연방의 독립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웅산의 암살 이후 협정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카렌, 카친, 라카인 등의 소수민족들은 다수 버마족(인구의 68%) 중심의 중앙정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카렌족은 카렌민족동맹(KNU)을 중심으로 반정부 투쟁을 지속해 왔으며, 카친족은 카친독립군(KIA)을 결성하여 무쟁투쟁을 벌이고 있고, 라카인족은 7,000명 규모의 아라칸 군대(AA)를 창설하여 군사적 저항을 하고 있다.

소수민족과의 내부적 갈등 구조는 군의 직접적인 정치개입과 지배를 초래하였다. 1962년 군부는 소수민족 반란으로 인한 국가위기 해소를 명분으로 쿠데타를 감행하였고, 소수민족을 연방 구성원으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이들의 존재를 군부의 정치적 역할과 군사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군은 지속적으로 자치권을 요구해 온 소수민족 집단이 미얀마 연방을 붕괴시킬 것이라 주장하며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권력 이양을 거부해 왔다. 소수민족 무장투장을 상대해야 하는 미얀마의 국내적 환경 속에서 군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일반적인 군대의 역할과는 달리 자국 영토 내부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왔다. 군부는 최근까지도 국방백서를 통해 국내적인 무장집단들과의 분쟁을 끝내는 것이 자신들의 우선적인 목표임을 밝히며 자신에게 “국가건설(state-building)”의 역할이 있기에 정치에 대한 개입이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군부에 의한 폭력 행사의 주요 대상은 소수민족 무장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정치적 분기점마다 군은 폭력 수단을 동원한 개입과 탄압을 통해 정치발전을 제약하고 국민적 희생을 초래해 왔다. 1988년 8월 민주화 항쟁 당시 군은 탱크와 기관총을 동원하여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였으며, 시위 진압 과정에서 1백 명이 사망하였다는 정부의 발표와 달리 약 3천 명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2년과 1988년에 이어 2021년 2월 1일 발생한 세 번째 군부 쿠데타는 5월 10일 기준 민간인 희생자 780명(18세 미만 43명), 체포된 사람 3,826명을 기록하며 군이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에 저항하는 자국 시민들을 상대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2. 능력과 이익

인구 5,283만 명에 67.7만㎢(한반도의 약 3배)의 영토면적을 지니고 있는 미얀마는 2019년 기준 686억 달러의 GDP와 1,299 달러의 1인당 GDP를 기록하고 있는 경제적 저발전 국가이다. 그러나 군은 이러한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미얀마 군대는 406,000명의 병력(육군 375,000명, 해군 16,000명, 공군 15,000명, 준군사조직 107,000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준군사조직에 속하는 경찰은 72,000명이다. 이러한 군병력 수는 인도네시아(396,000), 말레이시아(113,000), 필리핀(143,000), 싱가포르(51,000), 태국(361,000)보다 많으며, 베트남(482,000)에 비해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해 2020년 미얀마 국방비는 미화 약 21억 달러로 인도네시아(83억 달러), 말레이시아(37억 달러), 필리핀(36억 달러), 싱가포르(108억 달러), 태국(69억 달러), 베트남(56억 달러) 등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GDP 대비 국방비의 비중은 2.97%로서 싱가포르(3.23%)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이지만 인도네시아(0.77%), 말레이시아(1.11%), 필리핀(1.01%), 태국(1.37%), 베트남(1.68%) 등 동남아 주요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GDP 대비 국방비 비중과 육군 위주의 대규모 군병력 유지는 미얀마가 제한된 경제적 능력 속에서도 군사 부분에 상당한 자원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얀마 군부의 힘은 군사 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군부는 기업에 대한 직접 소유와 운영을 통해 막강한 자금력을 구축하며 미얀마 경제를 장악해 왔다. 군부가 지주회사와 자회사 등을 통해 장악하고 있는 산업 분야는 맥주, 담배, 통신, 광업, 부동산 등 미얀마 경제의 상당 부분을 포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군부의 자금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주요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투명성이 부재한 수익에 대한 점유이다. 군부가 원유와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의 수출을 통해 확보하는 외화는 정부 예산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것보다 더 많다. 특히 천연가스 수출은 매년 5억 달러의 수익을 군부에게 가져다주고 있다. 군부는 이 밖에도 보석과 목재 등에 대한 불법적인 밀수와 마약 생산에 관여하면서 많은 이윤을 얻고 있다. 2017년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탄압에 대한 명령권자이자 이번 쿠데타의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사령관 역시 미얀마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으며, 흘라잉의 자녀들도 식당, 체육관, 갤러리, 미디어 제작사 등의 기업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면서 각종 이권을 챙겨 왔다.

미얀마 군인들은 “국가 안의 국가(a state within the state)”로 존재하는 군대 체제 속에서 사회로부터 유리된 채 살아간다. 군이 자신의 은행, 병원, 학교, 대학, 보험회사, 농장, 방송사, 출판사, 영화사 등을 보유하며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기에 군인들에게 군은 그 자체가 국가이자 사회이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에 대한 군의 무자비한 폭력은 사회로부터 절연된 채 군에 대한 충성과 특권의식을 체화해 온 군의 이러한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과 시민에 대한 폭력성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국가 속에서 확대된 군의 역할과 경제에 대한 장악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단절된 조직의 폐쇄성도 함께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3.군부와 정치

미얀마 군부는 통제되지 않는 정치적 경쟁이 초래하는 무질서를 극복하고 질서와 번영이 실현되는 “규율번성적 민주주의(discipline-flourishing democracy)”를 오직 자신만이 실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88년 반독재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군은 1990년 5월 다당제 선거를 허용하였으나 이 선거에서 아웅산 수찌(Aung San Suu Kyi)를 내세운 야권 세력인 민족민주연맹(NLD)이 의석의 80%를 차지하며 승리하자 선거결과를 취소하고 군정을 이어갔다. 2007년 샤프론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투쟁과 오랜 국제적 고립으로 인한 경제 문제에 직면한 군은 민간정부의 출범을 위한 헌법 개정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규율이 확립된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명분 하에 군이 정치에 개입하고 주요 국가조직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군부 통치와 민주주의가 혼융된 유사민주주의(quasi-democracy) 체제를 창출하였다. 2008년 헌법은 3대 핵심 부처인 국방부(Ministry of Defence), 내무부(Ministry of Interior), 국경부(Ministry of Border) 장관을 군 총사령관이 지명하고, 군부가 대통령 후보 3인 중 1인을 추천(다수결로 대통령과 부통령 2명 결정)하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의회 의석의 25%를 선거와 무관하게 자동 할당받아 헌법 개정에 대해 군이 비토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만들었다. NLD가 불참한 2010년 선거에서 군부가 지원하는 연합연대개발당(USDP)이 승리하였고 군 총사령관에서 전역한 떼인 세인(Thein Sein)이 집권하였다.

그러나 가택연금의 해제와 함께 정치과정에 참여한 수찌가 이끄는 NLD는 2015년 11월 총선에서 투표로 결정되는 의석의 80%를 차지하며 승리하였고 유사민주주의 체제의 한계 속에서도 민주주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높였다. 2017년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탄압 작전은 수찌에게 국내적 정치기반과 국제적 평판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 이후 미얀마 정치 지형에 변화를 초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수찌가 로힝야족을 두둔함으로써 다수파 버마족의 지지를 상실할 것이라는 군부의 기대와는 달리 수찌는 이 작전을 옹호하였고 군에 의한 인종청소 작전을 국제사회 속에서 부인함으로써 국제적 평판을 희생하는 대가로 국내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NLD는 2020년 11월 선거에서 선출직 자리의 83%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고 USDP는 단지 7%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선거결과 NLD는 하원(국민대표원) 의원 440석의 58.6%인 258석을, 상원(민족대표원) 의원 224석의 61.6%인 138석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민주세력의 선거 승리는 군부에게 심각한 정치적 위기의식을 초래한다. 특히 선거 승리 후 수찌 정부가 향후 군부 의석수를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마련함으로써 군부의 반발과 위기의식은 더욱 증폭되었다. 군부의 입장에서 정치적 영향력의 축소와 국가조직에 대한 통제권 상실은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동안 누려온 경제적 이권을 반납하고 사회적 영향력 축소를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소수민족 집단들과의 평화회담을 통해 제2의 팡롱 협정을 추진한 수찌 정부의 행보는 소수민족에 대한 무력행사를 통해 자신의 국내적 역할을 합리화했던 군의 존재 이유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21년 2월 쿠데타를 감행한 군은 자신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흘라잉은 쿠데타 후 첫 대중 연설에서 “군은 국민의 편이며 ‘진실되고 규율화된 민주주의(true and disciplined democracy)’를 형성할 것”이며, 1년간의 비상사태 이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군부는 자신들이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민주주의에 이상이 생겼기에 헌법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8년 헌법은 주권 상실의 가능성이나 국가 결속 또는 연방의 통합을 방해하는 충분한 사유가 제기되면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사령관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군은 NLD가 2020년 선거에서 불법선거를 통해 승리하였기에 군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합법적인 방식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Win Myint)을 구금시키고 퇴역 장성 출신의 부통령(Myint Swe)을 대통령으로 승격시킨 직후 비상사태를 선포한 군부의 행동은 명백한 쿠데타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쿠데타는 미얀마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군의 정치개입을 가능하게 만든 헌법적, 제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수찌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얀마의 민주주의 세력 역시 한계를 드러냈다.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헌법적 제약에 의해 수찌는 2015년 총선 승리 이후 자신을 위해 “대통령보다 위(above the president)”에 있는 “국가고문(state counsellor)”이라는 직위를 만들어 공식적인 제도를 벗어난 개인화된 권력을 만들어 냈다. 군에 의한 로힝야족 탄압 당시 인권 규범과 가치보다는 버마족의 정치적 지지를 선택한 수찌의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선거 승리를 가져왔으나 자신이 두둔한 군에 의해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소수민족과의 평화회담을 모색하면서도 이들의 대표를 정부에 참여시키지 않는 이중적 태도는 2020년 선거에서 100만 명 이상의 소수민족 사람들이 투표권을 부여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쿠데타 세력이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국가의 무력 조직에 대한 제도적 통제권을 지니지 못한 민주 세력은 군부에 대항할 물리적 힘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군부와 다수 버마족 그리고 소수민족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표류하였으며 포용과 통합을 지향하는 민주적 시민 사회의 형성을 이끌지 못하면서 군부의 쿠데타 앞에 무력함을 드러냈다.

 

4. 폭력과 저항

쿠데타 발발 이후 군은 선출된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을 사살하고 집에 대한 급습을 통해 전국적인 시위와 저항을 분쇄하고 있다. 특히 2017년 로힝야족 학살에 책임이 있는 ‘33경보병사단’을 비롯한 실전경험이 있는 부대를 시위 진압을 위해 대도시에 배치하는 등 지난 수십 년간 국경지대에서 무장 소수민족 집단을 상대하며 훈련된 군의 폭력 수단을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군은 기관총과 로켓 발사 수류탄 등을 사용하며 시위자들을 공격하면서도 시위 진압을 위해 최소한의 무력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군부는 해체된 NLD 의원들로 구성된 연방의회대표자위원회(CRPH)가 임시정부를 표방하며 만든 국민통합정부(NUG)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폭탄 테러, 방화, 살인 등의 혐의로 반테러법에 의해 처벌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군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돌맹이, 화염병 등으로 저항하는 시위자들은 “무정부주의적 폭도(anarchic mobs)”로 지목되고 있으며 군은 자신들이 행하는 폭력적 시위진압을 질서 유지 차원에서 합리화하고 있다.

처음 몇 주간 평화적인 시위로 쿠데타에 저항하던 시민들은 불복종운동과 무력투쟁으로 저항의 방법을 다각화하고 있다. 불복종운동을 통한 저항은 총파업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데, 공무원, 트럭 기사, 교사, 의사, 은행원들을 포함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 가지 않음으로써 군부가 일상적인 민간 행정을 운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은행은 약 10% 정도의 지점만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병원, 기차, 항만에서부터 학교, 상점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많은 부문이 파업과 불복종운동으로 군부의 일상적인 통치를 방해하고 민간정부로 통치의 권위를 되돌리기 위해 정지해 있다.

무력투쟁을 통한 저항은 엘리트와 대중 차원에서 동시에 모색되고 있다. 엘리트 차원의 무력투쟁은 소수민족 무장집단과의 연계를 통한 쿠데타 세력에 대한 물리적 저항을 지향하고 있다. CRPH는 4월 1일 2008년 군부가 제정한 헌법의 폐기를 선언하고 평등권 등 국민의 기본권이 담긴 ‘연방 민주주의 헌장’에 따라 모든 민주주의 세력의 연립정부이자 집단 지도체제가 될 NUG를 구성할 것을 발표하였다. 4월 16일 창설된 NUG는 내각 26개 자리에 소수민족 출신 장차관 13명을 포함시킴으로써 소수민족과의 연대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하다”라는 인식 하에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합해 ‘연방군(federal army)’을 창설할 것을 선언하였다. 민주주의 세력이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합을 지향하는 것은 이들이 지닌 군사력 때문이다. 국경 지대에서 활동 중인 약 20여 개의 소수민족 민병대는 대공미사일, 대포, 무장한 병력수송차들을 갖춘 군사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만약 소수민족 무장 세력들이 국경 부근에서 봉기한다면 군부는 복수의 격전지에서 분산되어 싸워야 하고, 도시 지역의 시위자들에 대한 군의 압력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소수민족 무장집단들 사이의 통합된 반쿠데타 세력 결집이 아직 구체화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KNU와 KIA가 미얀마 군부와의 교전을 통한 군사적 저항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소수민족 무장집단들을 규합하여 통합된 ‘연방군’을 결성하더라도 전체 7만 5천에 불과한 민병대 병력으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군부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NUG를 주도하고 있는 CRPH가 과거 소수민족을 차별하던 버마족 정치인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버마족에 의한 차별과 탄압을 받았던 소수민족 정치인들로부터 신뢰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소수민족 집단들 내부에 존재하는 분열과 이들 집단 사이의 상호 갈등도 쿠데타 세력에 맞선 공동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내전 상황 속에서 형성된 상호 불신과 각자의 내부적 이해관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들이 분열 상태에 놓인다면 일부 소수민족 무장집단에 대해 유화적 입장을 통해 이들에 대한 포섭을 모색하는 군부의 “분열을 통한 격퇴” 전략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

무장투쟁을 통한 저항은 미얀마 시민들 차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평화시위를 통해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해 왔으나 군부의 폭력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자 반군부 저항의 방법을 군에 대한 반격을 통한 무장투쟁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사상 처음으로 KNU 등 소수민족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도시에서 사제 총기, 폭탄 등을 만들거나 국경지역에서 활동하는 소수민족 무장단체를 찾아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시민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대한 지지와 연대 노력은 단순히 군부에 대한 물리적 저항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 대중 차원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민족 간 불신과 갈등을 극복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형성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 제재와 협력

미얀마 쿠데타와 국가폭력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는 상이한 입장과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규범을 강조해 온 미국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제재와 압박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1988년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군부의 탄압을 계기로 경제제재와 함께 UN 안보리에 미얀마 인권문제를 상정했던 미국은 2011년 양국간 관계 개선을 계기로 제재를 완화하였으나 로힝야족 사태 발생으로 탄압의 주역인 흘라잉을 비롯한 주요 인사에 대한 제재를 가한 바 있다. 이번 쿠데타 발발 후 미 재무부와 국무부는 미얀마 군부 기업에 대한 제재를 통해 쿠데타 세력에 대해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외톨이 국가(a pariah state)’로 존재하던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당시 의미 있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미얀마와의 교역과 투자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미국 차원의 제재는 미얀마 경제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중국의 참여 없이는 그 효과가 결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인권문제를 지니고 있는 중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몰아낸 미얀마 군부의 행위를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4월 1일 각 진영이 절제력을 발휘해 상황이 격화하는 걸 피하기를 바란다면서도 “국제사회는 내정 불간섭이란 기본적 원칙을 전제로 미얀마의 정치적 화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지, 압박을 가해선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중국의 이러한 입장은 미얀마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효과적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UN 안보리는 4월 1일 성명에서 “미얀마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평화로운 시위대를 겨냥한 폭력과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한 것을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성명의 초안에 포함되었던 군부에 대한 제재를 의미하는 ‘후속 조치를 검토한다’는 문구는 중국의 반대로 삭제되었다. UN 안보리 순회 의장을 맡은 장쥔(張軍)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지지하지 않으며 미얀마 사태가 선거에 대한 견해 차이와 관련돼 있기에 정당들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동남아의 지역협력 기구인 ASEAN 역시 미얀마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 부분적인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ASEAN 10개 회원국은 4월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고 5개 항에 합의해 의장 성명 형태의 합의문을 발표함으로써 미얀마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차원의 공동노력을 시도하였다. 흘라잉 총사령관이 직접 참여한 회의를 통해 회원국 정상들은 (1) 즉각적 폭력 중단, (2)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 (3) ASEAN의 대화 중재, (4) 인도적 지원, (5) 특사와 대표단 방문에 대해 합의하였다. 그러나 미얀마 민주진영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모든 정치범의 석방’은 합의사항에서 제외되었고 대신 의장 성명에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가장 큰 문제는 미얀마 군부로 하여금 합의안을 이행하도록 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합의 이후에도 미얀마 군부는 시민과 소수민족을 향한 폭력 행위를 지속하면서, 상황이 안정된다면 ASEAN 정상들의 건설적인 제안을 신중히 검토하겠으며 현재의 우선순위는 “법과 질서 유지, 공동체 평화와 평온을 회복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내정 불간섭 원칙’을 유지해 온 ASEAN이 사태해결을 위한 합의에 도달했음에도 한계를 드러낸 것은 회원국 각국의 내부적 사정과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는 흘라잉 총사령관에게 폭력을 중단하고 정치범을 석방할 것을 요구해 온 반면, 반정부 인사에 대한 장기 구금 행위로 비판받고 있는 베트남, 미얀마 군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태국, 마약과의 전쟁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킨 필리핀 등은 미얀마를 포함 타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이러한 국제적 대응의 한계는 인권과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아직 국제사회 속에 부재하고 국제적인 공동 노력을 통해 국가폭력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와 능력이 각국의 내부 사정과 국익 계산에 의해 제약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6.과제와 전망

이번 군부 쿠데타는 국가형성 과정에서 힘을 키운 군부와의 타협에 기반한 불완전한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소수민족을 상대로 한 오랜 내전을 통해 전투에 익숙하고, 유사민주주의 헌법 하에 정치적으로 강력하며, 사회로부터 폐쇄된 경제왕국을 국가 내부에 건설하고, 과거 일련의 쿠데타를 통해 자국민을 죽이고도 처벌받지 않은 경험을 가진 미얀마 군부는 무력 수단을 국내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금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미얀마에서 또 다시 반복된 쿠데타와 군에 의한 폭력 사태는 정치에 대한 군의 개입이 일단 이루어지면 이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많은 희생과 오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과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미얀마의 국가폭력 사태는 일차적으로는 탈식민 국가건설 과정에서 과다성장한 군부의 폭력성과 이를 가능하게 만든 정치 제도의 취약성에서 기인하지만, 미얀마 민주주의 세력과 이를 지탱해 줄 시민사회의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는 수찌를 중심으로 한 버마족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민주주의 규범과 통치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태도 역시 이중성을 드러내 왔다. 2019년 아시아 바로미터 서베이(Asian Barometer Survey)는 87%의 미얀마인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으나, 3분의 2가량이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증진시키지도 질서를 유지시키지도 않는다고 믿고 있으며, 거의 절반가량이 군부가 정치에서 행하는 역할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얀마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와 엘리트 차원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태도 차원에서도 해결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미얀마 사태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부정적 전망과 긍정적 전망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군부는 수찌를 비롯한 민주주의 세력의 정치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향후 선거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변경하고 민주주의 세력을 배재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러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공고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 미얀마가 직면할 경제 위기 역시 민주화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6%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미얀마의 올해 국내총생산은 1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품 수출 역시 올해 약 60%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경제 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극빈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민간정부에 의한 국가의 공적 역할 수행이 부재한 상태에서 경제적 생존 능력을 상실한 국민들이 군부가 제공하는 물질적 유인에 의존하고 저항이 아닌 순응을 선택한다면 민주화에 대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 질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장기적 차원이지만 긍정적 전망 역시 가능하다. 국가통합의 역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한 미얀마 군부는 자국민에 대한 국가테러를 자행하면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평판을 국내외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군부에 의해 억압받아 온 소수민족들은 이번 쿠데타 발발 이전에도 군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또 다시 물리적 탄압의 대상이 된 버마족들도 군이 국가의 수호자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권력과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자국의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의도와 능력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고 있다. 군의 이러한 공적, 사회적 이미지 실추는 버마족 주류 집단과 군대 사이의 접합을 약화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미얀마 사회 내 군의 역할과 위상을 축소시키고 민주화를 향한 정치 발전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쿠데타는 군부의 의도와는 달리 시민들로 하여금 소수민족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있어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여 다민족을 아우르는 보다 포용적이고 응집력 있는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쿠데타 이후 시민들은 군이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 오랜 시기 자신들보다 심한 고통을 겪어 온 소수민족 사람들에 대해 공감과 동정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이 소수민족을 포용할 근본적인 전환이 아니라 현재 직면한 군부 탄압에 맞서기 위해 소수민족 무장집단의 물리적 힘을 활용하고자 하는 단기적인 전략적 태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군에 의한 쿠데타와 폭력적 억압에 대한 반복된 경험은 수십 년의 박해를 감내해 온 소수민족들에 대한 존중과 포용 없이는 이들을 향해 투사되던 군의 폭력이 언제든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할 수 없다는 인식을 미얀마 시민들에게 심어 줌으로써 향후 다민족을 포용하는 민주주의 발전에 장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경준 (제주대학교 교수)

퍼스트뉴스를 응원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이 퍼스트뉴스에 큰 힘이 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본사주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16길 18 실버빌타운 503호
  • 전화번호 : 010-6866-9289
  • 등록번호 : 서울 아04093
  • 등록 게제일 : 2013.8.9
  • 광주본부주소 : 광주 광역시 북구 서하로213.3F(오치동947-17)
  • 대표전화 : 062-371-1400
  • 팩스 : 062-371-7100
  • 등록번호 : 광주 다 00257, 광주 아 00146
  • 법인명 : 주식회사 퍼스트미드어그룹
  • 제호 : 퍼스트뉴스 통신
  • 명예회장 : 이종걸
  • 회장 : 한진섭
  • 발행,편집인 : 박채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대표 박채수
  • 김경은 변호사
  • 퍼스트뉴스 통신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퍼스트뉴스 통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firstnews@first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