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탓 아냐…자연재해로 인정해 달라” 절규

전라남도가 전국 양파·마늘 주산지로서의 명성을 잇따른 이상기후 앞에 무너뜨리고 있다. 2026년산 마늘이 파종기부터 수확기 직전까지 이어진 잦은 비와 급격한 일교차로 인해 심각한 ‘생리적 장해’를 입으면서, 농민들이 정부에 자연재해 인정을 호소하고 나섰다.
파종기 늦어지고, 동해 입고…‘벌마늘’ 속출
지난해 가을, 전남 지역은 파종 시기에 집중호우 수준의 잦은 비가 내렸다. 농민들은 제때 마늘을 심지 못했고, 불가피하게 파종이 늦어지면서 뿌리 발근이 지연됐다.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마늘은 겨울철 월동 과정에서 동해를 입었고, 결국 싹이 나지 않는 ‘결주’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무안에서 30년째 마늘 농사를 지어온 김모 씨(64)는 “제때 심지 못한 걸 후회해도 소용없다. 봄이 돼 보니 마늘 포기 절반이 땅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봄철 잦은 비, ‘비료 과다 흡수’ 부른다
설상가상으로, 해동 이후인 올해 4월에도 주기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마늘밭은 과습 상태에 빠졌고, 마늘은 필요 이상으로 비료를 흡수하게 됐다. 그 결과, 한 개의 마늘에서 여러 개의 작은 마늘로 갈라지는 ‘2차 생장’ 현상, 이른바 ‘벌마늘’ 피해가 급증했다.
김 씨는 “벌마늘은 상품성이 전혀 없다. 도매시장에서도 거의 외면받는다”고 설명했다.
주야간 온도 편차, 마늘에 ‘스트레스’ 가중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상기후로 인해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날이 지속됐다. 마늘은 급격한 온도 변화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영양생장(잎과 줄기 성장)이 제때 이뤄지지 못한 채 조기에 생식생장(알뿌리 성장)으로 전환됐다.
이로 인해 마늘 잎끝이 갈색으로 말라 떨어지고, 염분이 뿌리를 자극해 수분 흡수까지 방해받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수확량 15~25% 감소 전망…“이대로면 폐업”
영양 불균형과 뿌리 손상으로 흡수 기능이 떨어지면서 마늘 구의 크기는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올해 전남 지역 마늘 수확량이 평년 대비 15~2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인근 마늘 농가 조모 씨(58)는 “지난해 비 피해에 올해 이상기후까지 겹쳐 수확량이 반 토막 났다. 이대로라면 올해 농사 망한 게 아니라 아예 폐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을 아꼈다.
생리적 장해는 ‘자연재해’ 아닌가?
문제는 현행 제도가 ‘생리적 장해’를 자연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뭄, 홍수, 태풍 등 명시적인 기상 재해만 지원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잦은 비와 이상기후로 인한 간접 피해는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올해 마늘 피해는 농민의 재배 관리 실패가 아닌, 기후 조건과 생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면서도 “자연재해로 인정받으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늘 농민들은 지자체와 정부에 “생리적 장해도 자연재해에 포함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상기후가 ‘예외’가 아닌 ‘현실’이 된 지 오래다. 더 이상 마늘의 생리적 장해를 농민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만큼, 정부의 현실적인 제도 개선과 신속한 피해 지원이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