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 19대는 "필리버스터" 20대는 "삭발버스터"

2019-09-22     이행도 기자
이종걸

한국의 모든 영역이 발전하고 있지만 정치는 퇴행 중이다. 19대 국회 마무리에는 ‘필리버스터’가 있었다면, 20대 국회 마무리에는 자한당 의원들의 집단적인 릴레이 삭발 이벤트인 ‘삭발버스터’가 있다. 자한당이 삭발 대기자들 때문에 잠정합의한 의사일정을 또 번복한다는 이야기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의 정치적 반대 표시로서의 ‘삭발버스트’는 ‘필리버스터’와 비교할 때 너무 후퇴했다.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국회의사당 안에서 행한 의정활동이었다. 자한당의 ‘삭발버스터’는 국회라는 정치 공간을 걷어차고 장외로 나가서 정기국회의 의사일정까지 망치는 반의회적 폭거다.

필리버스터는 법안을 화두로 던졌다면, 삭발버스터는 두발을 화두로 던졌다. 전자는 의회민주주의가 계몽되는 시간이었고, 국가적 쟁점에는 국민적 관심과 숙의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웠다. 후자는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실종되고, 중도층까지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정치혐오만 커지는 시간이 되었다.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는  리더십이 확고했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내키지 않는 지지’ 속에서 공천 불이익도 감수하면서 단행했다. 자한당의 ‘삭발버스터’는 당 지도부를 향한 눈도장용이며, 공천신청서에 첨부할 사진촬영용이다. 정치인이 공천에 신경을 신경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도의’를 한참 벗어났다.

필리버스터는 한국을 빅브라더 감시사회로 전락시킬 독소조항이 많았던 테러방지법을 반대했다. ‘삭발버스터’는 검찰이 엄정하게 수사 중이며 조만간 결과가 나올 사안을 억지 트집을 잡으면서 정국 장악에 안간힘을 쓰는 것이며, 당대표·원내대표의 지도력 위기를 ‘외부의 적’을 만들어 잠재우려는 것이다.

필리버스터로 민주당 의원은 재평가되고 20대 총선 승리를 낳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삭발버스터 의원들은 의회민주주의 파계승이며, 극우의 에토스로 무장된 한국판 스킨헤드족이다.

자한당 의원들이 삭발하면서 잘려나가는 모발은 의회민주주의가, 건정한 정치상식이, 대한민국의 국격이 잘려나가는 것이다. 그들의 21대 총선성적표에는 무엇이 적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