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유적지 관광-대전

2017-12-02     최원창 기자

[퍼스트뉴스=충청 최원창 기자]대전의 유적지인 남간정사는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1683년(숙종 9)에 송시열이 지은 서당 건물로,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다. 송시열은 이 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의 학문을 완성시켰다.

대전관광의 명소인 우암사적지 공원은 송시열이 1607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촌의 외가에서 태어난 후로 화양동 등 여러 곳으로 주거를 옮겼으나 그가 주로 살았던 곳은 옛 대전의 근교였다. 초년에는 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인 소제()에 살았는데, 그 근처의 비래촌과 흥농촌이라는 곳에 각각 비래암과 능인암()이라는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다.

1683년 만년에 능인암 아래에 규모가 큰 서당을 새로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남간정사이다. 남간의 뜻은 양지바른 곳에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말하며,   이러한 뜻을 실천하기위해 계곡에 있는 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건물의 대청 밑을 지나서 연못으로 흘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한국 정원 조경사에 새로운 조경방법이다.

또한 이직당은 "마음을 곱게 쓰는집"이란 이란 뜻을 가진 우암 선생의 직(直) 사상을 담고 있으며 지금의 강당에 해당된다.남간정사 오른쪽에 있는 기국정은 소제동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초에 옮겨온 것이고, 뒤편 언덕에 있는 남간사()는 후에 건축된 것이다. 또, 한말에 유림의 발의로 이곳에서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의 목판()이 조성되었는데 이 목판은 남간정사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의 정사()는 성균관·향교·서원과 같은 교육기관으로서 개인이 건립한 사숙이 간혹 별채에 ‘정사’라는 편액을 붙여 두는 경우도 있다. 정사는 원래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수도를 하던 큰 나무 밑이나 동굴과 같은 거처를 의미하는 비하라(Vihara)에서 유래된 것이다. 비하라가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국 고유의 건축 형태인 정사로 번역되었다.

우암사적공원의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며, 동시에 박물관도 볼수 있는데,송시열 선생의 생활을 한눈에  볼수있는 곳이다.